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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 , 1809.2.12~1882.4.19) : 생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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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로버트 다윈
(Charles Robert Darwin , 1809.2.12~1882.4.19)  : 생물학자

" 이 세상 살아남는 생물은 가장 힘센 것도, 가장 지성 높은 것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적을을 잘하는 생물만이 살아남는다!"

생물진화론을 정하여 뜻을 세운 영국의 생물학자이다. 해군측량선 비글호에 박물학자로서 승선하여, 남아메리카·남태평양의 여러 섬과 오스트레일리아 등을 항해·탐사했고 그 관찰기록을 《비글호 항해기》로 출판하여 진화론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1859년에 진화론에 관한 자료를 정리한 《종()의 기원()》이라는 저작을 통해 진화사상을 공개 발표하였다.

생물진화론의 정립에 공헌하였다. 슈루스베리의 의사 로버트 다윈의 아들이며, 에라스머스 다윈의 손자로 태어났다. 1825년 에든버러대학에 입학하여 의학을 배웠으나 성격에 맞지 않아 중퇴하였다. 1828년 케임브리지대학으로 전학하여 신학을 공부하였다. 어릴 때부터 동식물에 관심을 가졌고, 케임브리지대학의 식물학 교수 J.헨슬로와 친교를 맺어 그 분야의 지도를 받았다. 1831년 22세 때 헨슬로의 권고로 해군측량선 비글호에 박물학자로서 승선하여, 남아메리카 ·남태평양의 여러 섬(특히 갈라파고스제도)과 오스트레일리아 등지를 두루 항해 ·탐사하고 1836년에 귀국하였다. 그 동안에 널리 동식물의 상()이나 지질() 등을 조사하여 후에 진화론을 제창하는 데 기초가 되는 자료를 모았다.

특히 갈라파고스제도에서의 관찰, 즉 다른 환경의 섬과 거기에서 생활하는 같은 계통의 생물에서 볼 수 있는 사소한 변이()와의 관련은, 다윈으로 하여금 진화사상의 심증을 굳히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또, C.라이앨의 《지질학 원리》도 큰 영향을 주었다. 1839년 《비글호 항해기 Journal of the Voyage of the Beagle》를 출판하여, 여행 중의 관찰기록을 발표하면서 진화론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또한 지질학상의 문제, 산호초의 생성원인의 연구에 착수하였다. 1842년에는 건강 때문에 켄트주()에 은거하여 진화론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고, 1856년부터 논문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1858년에 동남아시아에서 연구 중이던 A.R.월리스가 다윈과 같은 견해의 논문을 보내오자, 이에 놀란 그는 서둘러 논문을 정리하여 그 해 런던의 린네학회에 월리스의 논문과 함께 동시에 발표했고, 이듬해인 1859년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 in the Struggle for Life》(정식 명칭은 ‘자연 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이라는 저작에 진화사상을 공표하였다. 진화론의 골자는 바로 그 저서의 표제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자연선택설을 요인론()으로 한 것이다. 자연선택설은 생물의 어떤 종()의 개체 간에 변이가 생겼을 경우에, 그 생물이 생활하고 있는 환경에 가장 적합한 것만이 살아남고, 부적합한 것은 멸망해 버린다는 견해이다. 곧, 개체 간에서 경쟁이 항상 일어나고 자연의 힘으로 선택이 반복되는 결과, 진화가 생긴다고 하는 설이다.

이 설에서는 개체간의 변이가 어떻게 생기느냐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고, 라마르크가 제창한 환경의 영향에 따라 생긴 변이가 다음 대에 유전한다고 하는 획득형질유전론()을 채용하고 있다. 또한, 개체 간에 경쟁이 일어난다고 하는 견해는 T.R.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시사를 받은 것이라고 한다. 《종의 기원》은 초판 1,250부가 발매 당일에 매진될 정도로 큰 반응을 불러일으켜, 후에 6판까지 출판되었다. 1860년 진화론에 관한 논쟁이 옥스퍼드에서 일어나 T.H.헉슬리와 J.D.후커 등의 지지로 다윈의 견해가 인정을 받았다. 1862∼1881년에 한 걸음 더 나아간 진화론에 관한 저작을 발표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사육동식물()의 변이 The Variation in Animals and Plants under Domestication》(1868) 《인류의 유래와 성선택() 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1871)이 유명하다.

특히 후자는 《종의 기원》에서 뚜렷이 제시하지 못했던 인간의 진화에 대하여 그의 태도를 분명히 한 저술로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그는 진화론 외에도 생물학상의 몇 가지 연구를 하였다. 1880년의 《식물의 운동력》은 식물의 굴성()에 대한 선구적 연구인데, 식물학자인 아들 프랜시스 다윈(1848∼1925)과 공동으로 이룬 것이다. 또한, 《식물의 교배에 관한 연구》(1876)와 《지렁이의 작용에 의한 토양의 문제》(1881)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있다. 그는 1882년 켄트 다운에서 죽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물리학에서의 뉴턴 역학과 더불어 사상의 혁신을 가져와 그 후의 자연관 ·세계관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출생-사망 : 1809년 2월 12일 (영국) - 1882년 4월 19일
학력 : 캠브리지대학교 신학 학사
경력 : 1859년 종의 기원 발표
          1858년 런던 린네학회 진화론 발표
          1836년 남아메리카, 남태평양, 오스트레일리아 항해, 탐사
          1831년 해군측량선 비글호 박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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